독일은 사회 민주주의(Sozialdemokratie)를 추구하며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를 운영하는 국가로 그 특성상 사회 전반에 국가의 영향력이 지대하고, 국가 지속발전에 핵심인 교육은 공교육 체계 하에 시행되고 있어 교사의 교권 또한 강력하다.
교권은 교사의 권리와 권위를 포괄한다. 교사의 권리는 교육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육자율권, 국가에 대한 업무보장권, 복지혜택권으로 볼 수 있으며, 교사의 권위는 교사의 의무수행과 권리보장을 토대로 교사 자신이 갖춘 실력과 인격에서 기인하는 신뢰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의 의무수행을 위한 권리가 보장되고 권위가 바로 서야 비로소 올바른 교권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권이 강력하게 확립된 독일의 교권 관련 사회 제도적 근거와 동향 분석을 통해 교권 침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시사점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교권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독일 교사의 교권은 대표적으로 『학교법』과 『공립학교 학교장과 교사 일반 업무규정』에서 보호하고 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이하, ‘NRW’)의 경우 학교법 제57조에서 학생의 수업, 훈육, 상담, 평가, 감독, 돌봄이 교사 고유의 책임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제53조를 통해서는 교사가 문제 학생에게 단계적으로 다양한 훈육조치와 징계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69조는 교사의 입장을 대변할 교사위원회(Lehrerrat)를 학교에 설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공립학교 학교장과 교사 일반 업무규정』은 교사의 업무수행 전반과 권리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제3조 '일반적 권리와 의무'에서 교사의 업무 보장과 복지 혜택에 관한 권리를 규정하고 제5조를 통해 교사의 '교육적 자유와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교권보호 단체
독일에는 교권보호의 토대가 되는 기구와 단체가 매우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선 학교법을 통해 학교 내 교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며 각 소속기관에 따라 운영되는 인사평의회(Personalrat)도 교육부와 각 학교청에 설치되어 교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교사위원회는 학교교육 참여위원회인 동시에 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학교장은 교사위원회 위원 선거에 전혀 관여할 수 없으며 교사위원회는 학교장에게 학교교육 및 교사와 관련된 건의사항이나 불만을 전달하며 교사의 권익을 대변하고 학교장의 독단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사 노동조합의 역할을 하는 단체도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교육협회(Verband Bildung und Erziehung), 교육노조(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chaft), 독일 어문학협회(Der Deutsche Philologenverband)가 있다. 교육협회는 독일 공무원연합 소속기관으로 교사, 사회교육사, 유치원 훈육교사와 이를 위한 교육을 받는 자의 노동조합적, 교육 정책적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교육노조는 독일 내 유치원, 학교, 대학과 그 외 모든 교육기관 종사자 약 270,000명의 의견을 대변하는 교육 노동조합이고 독일 어문학협회는 김나지움 교사 권익보호를 위한 단체이다. 해당 단체들은 주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임금과 근로조건의 정의실현과 관련하여 소속회원을 위한 법적 보호, 이익 대변, 임금협상, 포괄적인 정보제공을 하며 교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교사는 이들 단체를 선택하여 가입할 수 있다.
교육의 자유(padagogische Freiheit)
- 교육자율권
독일의 교사는 교육자율권을 최대한 보장받는다. 독일 학교법과 교사 업무규정에 학생을 위한 수업, 훈육, 상담, 평가, 감독, 돌봄이 교사 고유의 책임인 동시에 교사에게 이를 위한 교육의 자유 즉 교육자율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자율권은 수업 주제와 재료 선정 등의 교육내용과 교수 방법에 대한 결정권, 학생평가 결정권, 학생 지도와 징계권 등을 의미한다. 주 교육부에서 교과과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각 교과의 수업목표와 이를 위한 선택적 교육방침만을 제시할 뿐 수업운영과 평가에 관한 세부사항은 교사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교사의 교육자율권 보장은 교사가 자기책임 하에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을 소신 있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여 결과적으로 교권확립의 가장 결정적 요소가 되고 있다.
- 교사의 강력한 성적평가 재량
교육자율권과 관련하여 독일 교사의 강력한 성적평가 재량권은 교권확립과 학생통제의 핵심적 토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일학교의 성적평가는 지필평가와 구두평가로 이루어진다. 아비투어를 준비하는 오버슈투페(Oberstufe)1)를 제외하고는 초·중등학교 전체 학년에서 보편적으로 주요과목과 어학과목에서만 지필평가가 있다. 지필평가가 없는 과목은 교사가 학기 내 수업 시간을 통해 보여준 학생의 학업능력과 태도, 수업 참여도를 평가한 구두평가로만 성적이 주어진다.
독일 학교의 지필평가는 전체가 주관식 서술형으로 지필평가 자체에도 교사의 주관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필평가가 있는 과목도 구두평가가 함께 이루어진다. 구두평가는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으며 교사가 한 학기 수업 전반을 통해 수업 중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답변, 발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의 태도, 과제준비, 동료와의 협력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한다. 독일의 교육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보다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적용하여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표현하고 타인과 공유하며 자신의 논거를 확실히 제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지필평가 점수가 좋더라도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수업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서술형 시험과 수업 전반을 고려한 교사의 구두평가는 교사의 권위나 교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실현이 불가능한데 독일 사회에서 시험평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교사의 권위가 높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육 기반의 교육
독일은 초·중·고등교육 90% 이상이 공립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초등에서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시행되고 있어 교육체계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크다. 또한, 독일은 의무교육 기간 동안 학교 재학의 의무가 있으며, 홈스쿨링 등이 전혀 허용되지 않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검정고시와 같은 제도가 없으므로 대학입학 자격획득도 학교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학교에 선행교육이 없고 일부 유급의 위험이 있는 학생만이 과외를 받는 정도라 사교육 또한 전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교육이 전적으로 공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학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학교 교사의 역할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독일은 시민사회 형성에 공무원 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공무원 집단에 대한 위상이 매우 높고 이에 공무원 신분을 갖는 교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매우 높다.
전문성 확보가 가능한 교사교육체계
독일 교사교육은 대학교육과 교사예비근무(Vorbereitungsdienst)의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교직과정 이수를 위해서는 석사과정까지 이수해야 하고 이후 대학교육으로만은 교사가 될 수 없으며 이후 학교현장에서 18개월간 근무하여 국가고시를 통과하여야만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대학교육 기간에도 장기간의 학교실습이(‘NRW’의 경우 1학기) 있고 학교현장과 연계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현재는 대학입학 전 입학조건으로 학교실습을 요구하는 대학이 많다. 이러한 수준 높은 대학교육과 장기간의 실제 학교현장에서의 교육은 교사 전문성 확보를 가능하게 하여 교사의 권위와 신뢰의 기반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교권 관련 문제 - 성적 평가 관련
독일의 교사는 학교 수업과 평가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지필평가도 서술형이라 교사의 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교사 재량에 따른 구두평가도 전체 성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교사의 판단 기준이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모든 교사가 절대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학교현장에서 성적평가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교사 개인이 선호하는 학생에게 발표기회를 자주 주어 구두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으며 외국인에 대한 선입관이나 성별에 따른 선호도 차이로 성적이 부당하게 평가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실제 빌레펠트 시의 모 김나지움의 경우 김나지움 입학 후 10학년까지 줄곧 최우수 학점인 1(A)을 받은 학생이 개인의 평가 기준이 높아 절대 1을 주지 않은 교사에게 수업받아 1년간 2(B)만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해당 학급에 1을 받은 학생은 물론 없었다. 또한, 지속해서 1을 받던 학생이 교사와 수업 내용에 대한 의견 다툼이 있어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3(C)을 받은 예도 있다.
성적 평가가 부당할 경우 학생, 학부모는 교사 개인, 학교, 학교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수업이 교사의 고유영역이고 그 안에서 구두 성적이 평가되기 때문에 교사는 자신의 주관에 따른 논리적 근거를 필요에 따라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쟁점이 될 만큼의 문제를 제외하고 독일에서는 교사의 의지가 확고할 경우 학생의 이의제기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권 관련 최근 동향
현재 독일에서 교사의 권리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는 주요 주제는 직원 신분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 처우 개선과 관련되 것이다. 독일 대다수 교사가 공무원 신분(구동독지역 일부 주 제외)을 가지고 있으나 공무원은 세금과 사회비용 분담 비율은 낮고 국가의 복지비용 분담은 높아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교사를 직원 신분으로 채용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따라서 같은 업무를 수행함에도 직원 신분 교사와 공무원 신분 교사의 처우가 달라 직원 신분 교사의 처우 개선 요구가 지속해서 논의되고 있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의 호봉 문제도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독일은 초등학교, 하우푸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 교사의 임금에 차이가 있는데 초등학교 교사협회(노조)가 모든 교사가 동일한 교사교육을 받고 같은 교육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가르치는 학생 대상이 달라 교사 호봉이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현재까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사의 호봉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주는 없지만 슬레스빅-홀슈타인주의 경우 최근 전체 중등학교 교사의 호봉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조정하고 초등학교 교사 호봉 조정 문제도 고려의 대상으로 열어두고 있다.
시사점
독일에도 학생의 폭력성이 커지면서 과거보다 교사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베를린 노이쾰른과 같은 특정 지역에는 문제로 대두하고 있기도 하나, 전반적으로 교권이 강력히 확립되어 있어 독일 사회에서 교권침해 관련 사항은 현재 사회적 문제로 논의되고 있지 않으며 교사 폭력에 관한 전반적 통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 교사의 강력한 교권은 사회 전반의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여 나타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교권확립을 위한 교육자율권, 학생징계권, 교사권익 보호를 위한 법 규정이 마련되어 있고 교사권익을 보호할 제도와 장치가 학교 내외부에 여러 차원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교육제도와 사회의 전반적인 토대가 교사에 대한 신뢰와 권위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은 교육에 국가의 혜택과 영향력이 크고 공교육 토대의 학교교육을 통해서만 교육이 가능한 구조이다. 따라서 교육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학교 교사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신뢰는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합하도록 독일의 모든 교사는 석사졸업까지의 수준 높은 대학교육과 이후 18개월간의 학교 현장 교사예비근무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제도를 기반으로 독일 교사에게는 특히 자율적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평가할 강력한 교육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학생이 가진 잠재력과 적성을 고려하여 올바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소신과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가장 우선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 교권이다. 따라서 수업과 평가에 대한 교육자율권이 교사에게 주어져야 할 것인데 독일은 이를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또한 교사의 성적평가 권한은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의 권위에 도전할 경우 이를 합법적으로 통제할 방안도 되고 있다.
1) 중등 2단계 과정으로 대학을 준비하는 10학년에서 12학년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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